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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있으면 담배를 피우기 편합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 환기가 필요하다 느끼고
문을 열었습니다. 출입문 바로 옆에 있는 제 자리가 보이는 게 싫어 진하게 선팅한
나의 공간. 문 바로 밖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죠.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젠 완연한 가을비가 이장희라는 가수의 비의 나그네를
떠올릴 정도로 조심스럽게 내립니다.
문을 열고 있을 때 당신은 후기를 썼더군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카톡 프로필을 보곤 하는데 어제 당신의 프로필은 제게 아주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젊은 날의 이외수의 자취방을 연상하는 당신의 상태가, 마침 밤부터 아침까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제 현실과 잘 맞았던 것이죠.
서울과 부산 그다지 멀지는 않습니다.
침대에서 편하게 자는 대신 의자 젖히고 잠시 눈붙이고 있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고,
뿌리가 그곳에 있는 사람에겐, 낯설지만 미워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죠.
더구나 당신은 모두 자고 있는 그 시각에 깨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새벽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치열한 작가.
그래요.
전 시인이지만, 이게 직업은 아닙니다.
취미도 직업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움을 떠나 불가능이니 어쩔 수 없죠.
다행히 전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고 수업을 하는 동안은 행복하니까 좀 낫지만
그럼에도 문학에겐 미안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당신의 눈에선 정열이 보였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갖지 못했고 느낄 수 없었던 무엇인가를 향한 열정이 느껴졌고 그러니
감사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저일 겁니다.
잊고 지내던 나의 속에 있는 그것을 끄집어 낼 기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죠.
꿈을 이루는 과정은 어렵고, 어려워야 합니다.
어쩌면 꿈이 이루어 지지 않는 편이 삶의 종착역에서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전 당신의
눈빛에서 머지 않아 실현될 수 있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보고 왔습니다.
누굴 도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으로라도 응원할 수
있다는 것.
혼자 처절하게 고통받는 이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젠 행복하세요. 너무 행복하진 말고요. 그럼 글이 안 나올지 모르니까요.
시박에서는 저와 친한 척하면 안 됩니다.
아직 미운 털이 많이 남아 있기에 괜히 걱정이 되네요.
여전히 돌아다니는 소문들로 인해 괜히 마음 상할까봐 말이죠.
하긴, 당신은 강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아름답고 꿈을 위해 노력하고 지금도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편하게 잤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
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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