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을 결심했을 때 김다임(62)씨는 "대학 다니는 손자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2년7개월 동안 일한 청소노동자다.

머리카락이 깎여나가자 동료들은 김씨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김씨는 도리어 "머리가 다시 자랄 때까지는 남편 앞에서 모자도 못 벗겠지만, 내가 한 번 희생하면 여러 사람이 살 수 있지 않겠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씨를 지켜보던 정복례(71)씨도 "국민학교(초등학교)밖에 안 다녀서 이 일밖에 몰랐고,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며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면 나이가 많아 다른 데서 일하기도 어렵다"며 답답해했다.

한달여 전에 12월31일자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계약 마지막날인 31일 학교 쪽에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서울 중구 동국대 중앙에 있는 광장인 '팔정도'에서 삭발식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서울일반노동조합 동국대 시설관리분회 소속인 이들 청소노동자 60여명은 지난 29일부터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앞서 동국대는 지난 11월30일 청소 용역계약을 맺고 있던 '씨큐어넷'에 1년 만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센추리온이십일'이라는 업체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센추리온이십일이 지난 28일 채용공고를 내자 노조에 속한 85명이 원서를 냈지만, 마지막날인 31일까지 면접에 오라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 고용 승계 여부에 대해서도 동국대와 새 용역업체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0월29일 만들어진 노조 때문에 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해고하려고 대학 쪽이 일부러 용역업체를 바꾼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서울일반노조 박문순 법규부장은 "계약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용역업체를 바꾼 것도 그렇고, 기존 용역업체인 씨큐어넷과 새 용역업체인 센추리온이십일의 주소가 같은 점, 씨큐어넷 대표이사 중 한 명이 센추리온이십일의 이사 중 한 명인 점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이어 "실질적인 사용자이고, 용역업체를 지휘·감독하는 동국대가 고용 승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범 준수와 주 5일 근무, 인격적인 대우 등을 요구하며 노조를 만들었고, 전체 청소노동자 116명 가운데 93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동국대 관계자는 "노조 때문에 용역업체를 변경한 게 아니라 일을 잘 못했기 때문에 바꾼 것이고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라며 "고용 승계는 용역업체와 청소노동자 사이의 문제라 학교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센추리온이십일 관계자도 "기존 청소노동자들은 새 채용절차에 따라 고용 여부가 결정될 것이며, 기존 업체인 씨큐어넷과 우리 회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